97 세대는 격식과 관행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아

조정훈 예비후보는 1970년대 생들은 모임을 꾸리는 방법부터가 다르다고 말했다. (사진 김한주 기자)

공희준 : 97 세대는 86 세대, 곧 586 세대와 비교해 그 실체가 아직까지는 뚜렷이 잡히지를 않습니다. 확실한 구심점도 보이지 않고요.

조정훈 : 586으로 불리는 선배 세대를 보면 자기들끼리 모일 경우 제일 먼저 하는 행동이 지도부를 세우는 일입니다. 회장부터 무조건 먼저 뽑곤 합니다. 대표자를 선정한 다음에는 거창하고 방대한 조직도를 치밀하게 그려나가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위계가 정해지고, 서열이 확립됩니다. 저희 세대가 만약에 그러한 절차와 순서대로 모임을 꾸려나간다면 첫 번째 모임이 마지막 모임이 되기 십상입니다.

재정과 일정에 관계된 부분도 97 세대와 86 세대의 처리 방식이 다릅니다. 70년대 생 정치인들의 모임에서는 딱히 정해진 회비가 없습니다. 있으면 내고, 없으면 구태여 무리하면서까지 납부하지를 않습니다. 모이는 시간도 들쑥날쑥합니다. 모일 수 있으면 모이고, 모이기 어려우면 쿨 하게 건너뜁니다. 왜냐면 굳이 다달이 한 번씩 1년에 12번을 만날 까닭이 없으니까요. 대신에 즉석 번개팅을 자주 갖습니다. 경직된 규칙과 관행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을 저희 세대는 선호합니다. 제가 이참에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은 우리 사회의 전체적 분위기가 격식과 전례에 구속당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당신특별시라는 저의 선거구호에 그러한 시대전환의 메시지를 싣고 싶었습니다.

시대전환은 작은 정당입니다. 제가 유명한 후보자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천만 서울시민 한 명, 한 명이 모두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란 의미가 담긴 ‘당신특별시’라는 슬로건은 시대전환의 규모나 저의 인지도와는 상관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공명과 폭넓은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가 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정치가 평범한 시민들의 눈높이에서 생각하는 법을 더 늦기 전에 체득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이 국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우등생이 됐다고 한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급상승을 했다고 한들 대다수 일반 국민의 실질적인 삶의 질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그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서울시장에 출마한 여야의 내로라하는 후보자들마다 수십만 채의 주택을 조기에 공급하겠다며 기염을 토하고 있습니다. 때마침 제가 방송에 출연하게 되어서 해당 방송국의 작가님께 유력 후보들의 주택 공약에 대한 느낌을 여쭤본 적이 있습니다. 일말의 감동조차 오지 않는다는 게 저의 질문을 받은 작가님의 대답이었습니다. 자신에게는 딱 한 채의 집만 필요할 뿐인데, 정치인들은 수십만 채 운운하면서 뜬구름 잡는 허황된 소리나 남발하고 있다는 게 그분께서 무덤덤하다 못해 아예 냉소적인 반응을 보여주신 이유였습니다.

시민들께서는 시민의 휴식처가 되어주고, 맑고 신선한 공기를 지역에 공급해온 태릉골프장 같은 곳을 밀어내고 성냥갑처럼 개성 없는 고층건물들이 빽빽이 들어선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는 정책을 원하지 않습니다. 임대라도 좋으니 자신이 살고 싶은 곳에서 마음 편히 거주할 수 있기만을 바랄 따름입니다. 아이들의 학교진학 문제로 인해 수시로 이삿짐을 꾸리는 고단한 일상을 더 이상은 되풀이하지 않고 싶은 게 서울시민들의 소박한 바람입니다. 저는 시민들의 그와 같은 소박한 바람을 충실하게 담아내는 정책으로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겠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하기 마련입니다. 저희 당의 당명이 시대전환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위에서 일방적으로 전환을 강요하고 압박하는 상명하복의 권위주의적 행정을 펼치지는 않을 심산입니다. 본인이 앞에서 국민들을 이끌겠다고 말하는 건 본래 권력자의 언어입니다. 지배자의 언어입니다. 공급자의 언어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사회에는 전환은커녕 현상유지에도 벅차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시대전환의 당대표가 전환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고백하는 건 서슴없는 자기부정이었다. 그런데 본디 모든 변화와 발전, 진보와 혁신은 과감한 자기부정에서 출발하기 마련이다. 30여 년 전의 낡고 빛바랜 자기를 부정하지 못해 소통불능의 완고한 꼰대가 대책 없이 되어가는 ‘의장님’ 출신의 기성 586 정치인들의 지독한 보수성과 징그러운 복고주의를 염두에 둔다면 조정훈 의원의 서슴없는 자기부정은 필자에게 엄청난 신선한 충격으로 느껴졌다.

주 4일제 근무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조정훈 후보는 시장은 명령하고, 지시하고, 통제하는 사람이 되어선 안 된다고 역설했다. (사진 김한주)

지난 70년의 대한민국 현대사는 “나를 믿고 따라오라”며 힘센 사람들이 힘없는 사람들을 윽박지르는 구도로 점철돼왔습니다. 저는 소수의 인간이 다수의 대중을 선도하고 견인하는 시대는 이제 시효가 다했다고 믿습니다. 더욱이 개인을 희생시켜 굴러가는 조직과 집단은 더는 존립할 가치도, 의미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조직과 집단은 어떠한 목적에 기반해 존속하고 운영되어야 할까요? 그건 개인을 살기 좋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데 있습니다. 저희들 세대는, 그리고 저희 후배 세대는 개인을 희생시켜 조직의 팽창과 집단의 성공을 도모하려는 기획과 움직임에 대해서는 단호히 “아니오!”라고 말해왔습니다.

주 4일제 도입과, ‘혼삶러’ 즉 혼자 살고 있는 1인 가구에 대한 역차별 폐지는 제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면서 내놓은 대표적 공약들입니다. 두 가지 전부 우리나라가 공동체의 시대에서 자유로운 개인의 시대로 이행했다는 전제 위에서 탄생한 정책입니다.

주 4일 근무제는 사람들의 일주일의 생활주기를 “월화수목토토일”로 바꿔나가자는 정책입니다. 노동시간을 대폭적으로 단축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주 4일제를 공약하자 이 정책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동영상의 조회수가 순식간에 100만 회에 도달했습니다. 이 놀라운 조회수를 달성시킨 원동력은 시대전환의 힘이 아닙니다. 저 조정훈의 힘은 더더욱 아닙니다. 전적으로 의제의 힘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초장시간의 힘겨운 노동에 완전히 지쳐 있다는 증거입니다.

기본소득이 공론장의 무대에 본격적으로 올라오자 찬반 열기가 단박에 달아올랐습니다. 누리꾼들이 기본소득을 둘러싸고 댓글로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면 살벌하기 그지없습니다. 저는 주 4일제가 기본소득 못잖은 파장과 폭풍을 우리 사회에 불러일으킬 걸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는 양극화가 종류와 영역을 가리지 않고 급속도로 확산ㆍ심화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휴식의 양극화라는 전대미문의 극단적인 양극화 추세마저 출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휴식의 양극화 상태를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대한민국은 한 주에 편하게 나흘만 일해도 되는 혜택 받은 극수소와, 심지어 일요일에도 평일과 마찬가지로 출근해야만 겨우 입에 풀칠을 할 수 있는 불우한 대다수로 심각하게 분열될 가능성을 배제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소득의 양극화와 자산의 양극화조차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휴식의 양극화마저 대두하도록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휴식의 양극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중요한 과업을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에서부터 착수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단서조건이 수반됩니다. 힘으로만 우격다짐으로 정책을 밀어붙이지는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 정책의 도입을 희망하는 기업과 개인들이 주 4일제 근무제를 원활하고 신속하게 실시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과 물리적 환경을 마련해주는 데 서울시정의 중점을 두자는 게 제가 준비해놓은 복안입니다.

그러므로 서울시장의 역할에 대한 재조정과 재정립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는 서울시장을 지배계급의 우두머리들 가운데 하나 정도로 간주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그러나 서울시장이 통제하고 명령하고 지시하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서울시장이 시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물이어야만 한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왔습니다. 본질적으로 서울시장은 시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정노동자이기 때문입니다. (③회에 계속됨…)